제3국을 거친 EU산 화물, 협정관세는 화물을 쪼개는 순간 사라진다

국제물류에서 원산지 상품이 목적지까지 곧장 운송되는 경우는 오히려 예외에 가깝다. 대부분의 화물은 허브 항만에서 환적되거나 제3국 물류창고를 거친다. 그런데 이 경유 방식 하나가 FTA 협정관세의 적용 여부를 가른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직접운송원칙이란 원산지 상품이 수출 당사국에서 수입 당사국으로 직접 운송되어야 협정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다는 요건이다. FTA 협정관세는 양허대상 품목일 것, 원산지가 체약상대국일 것, 협정관세 적용을 신청할 것, 그리고 양 당사국 간 직접운송될 것이라는 네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야 적용된다. 이 중 직접운송은 원산지 상품이 제3국을 거치는 동안 다른 물품으로 바꿔치기되거나 원산지가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다.

관건은 “제3국을 거쳤는가”가 아니라 “그 제3국에서 화물이 분리되었는가“에 있다.
한-EU FTA는 비당사국을 경유하는 단일탁송화물에 대해, 경유국에서 자유로운 유통을 위한 반출이 없고 하역·재선적·보존 작업 외의 공정이 없으면 직접운송으로 인정한다. 즉 창고에 잠시 머물렀더라도 화물 전체가 그대로 다시 실려 나가면 문제가 없다.

반면 보세창고도거래(BWT)에서 화물을 쪼개는 순간 직접운송은 깨진다. 관세청의 FTA 민원답변 사례에 따르면, 독일산 물품을 비당사국 물류창고에 보관한 뒤 그중 일부만 한국으로 수입한 경우, 화물의 분리가 이루어져 단일탁송화물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덴마크산 물품을 일본 보세창고에 보관 후 일부 수량만 들여온 경우도 결론은 같았다. 협정이 허용하는 작업은 하역·재선적·보존뿐이며, 화물을 분할하는 행위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가지 흔한 오해도 짚어둘 필요가 있다. EU 역내국 간 환적은 애초에 ‘환적’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선적한 물품이 독일에서 환적되어 한국으로 오더라도, 프랑스와 독일은 모두 EU 회원국이므로 같은 당사국 영역 내의 이동이다. 이 경우 협정관세적용신청서의 환적 여부란에는 ‘N’으로 표기한다. 한-EU FTA에서 ‘양 당사국’은 대한민국과 유럽연합 및 그 회원국 전체를 뜻하기 때문이다.

브렉시트는 이 지형을 바꿔놓았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면서 한-EU FTA 관점에서 영국은 비당사국이 되었다. 따라서 EU산 물품이 영국을 단순 경유하는 경우는 통과선하증권이나 영국 관세당국의 세관통제 입증서류로 직접운송을 입증할 수 있으나, 영국 물류창고에서 화물을 분리하는 BWT 거래는 단일탁송화물 요건 위반으로 협정관세가 부인된다. 브렉시트 이전의 관행을 그대로 유지하다 사후검증에서 추징되는 사례가 실제로 나오는 지점이다.

비당사국을 경유했으나 직접운송 요건을 충족한다면, 이를 입증할 서류를 갖춰야 한다. 한-EU FTA 기준으로는 제3국에서의 환적·보관 상황 증거, 최초 운송업자가 전 구간을 책임지고 발행한 통과선하증권, 또는 경유국 관세당국이 제품 설명·하역 및 재선적 일자·경유국 내 상태를 기재해 발급한 비가공증명서 중 하나 이상이 필요하다.

18년간 통관 현장에서 확인한 바로는, 직접운송 위반의 상당수가 원산지 자체의 결함이 아니라 물류 설계의 문제였다.
물건은 분명한 EU산인데, 비용 절감을 위해 제3국 창고에 나눠 보관하고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반출하는 순간 협정관세가 사라진다.
직접운송은 통관 서류를 준비하는 단계가 아니라 운송·보관 계약을 설계하는 순간에 이미 결정된다고 보아야 한다.

일 잘 하는 관세사는 도착한 서류를 빠르게 처리하는 관세사가 아니라, 물류 구조를 짜기 전에 화물분리 리스크를 짚어주는 관세사다. 제3국 경유가 예정된 거래라면, 선적 전에 경유 방식이 단순 경유인지 화물분리인지부터 점검할 것을 권한다.

FTA 원산지 및 직접운송 관련 컨설팅은 YD글로벌 관세사무소 FTA 컨설팅 페이지(https://www.ydglogistics.com/fta-컨설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창우 대표관세사 — YD글로벌 관세사무소 대표

2009년 개업 이래 안양·과천·판교·군포·의왕 지역 수출입 기업의 통관을 맡아 왔습니다. 삼성전자·현대기아 등 대기업 통관 실무 18년, 2019년 관세청장 표창을 받았습니다.

HS코드 품목분류 · FTA 원산지 컨설팅 · 수출입통관 · 관세환급 · 행정쟁송 · 포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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